잔금일을 며칠 앞두고 습관처럼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떼어봤는데 소유자란에 모르는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도인에게 전화하면 "사정이 생겼으니 계약금 두 배로 돌려주겠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반대로 매도인 쪽에서는 계약 후 시세가 크게 올라 "배액만 물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다가, 이미 중도금이 통장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기도 합니다.
이중매매는 계약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이 글에서는 계약금 단계의 해약금 해제(민법 제565조)와 그 시한인 "이행에 착수하기 전"의 의미, 중도금 지급 이후의 법률관계, 이미 제2매수인 앞으로 등기가 마쳐진 경우의 구제수단, 배임죄 성립 여부를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상담 사례
사례 ① 계약금만 받은 상태에서 시세가 올랐습니다
2026년 3월 10일 A씨는 아파트를 9억 원에 매도하기로 하고 계약금 9,0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중도금 지급일은 5월 10일이었는데, 4월 말 같은 단지 매물이 10억 5,000만 원에 거래되자 A씨는 1억 8,000만 원을 돌려줄 테니 계약을 없던 일로 하자고 통보했습니다.
사례 ② 중도금까지 냈는데 등기가 넘어갔습니다
B씨는 2026년 1월 12일 상가를 6억 원에 매수하기로 하고 계약금 6,000만 원을, 3월 2일 중도금 2억 4,000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잔금일인 6월 1일 등기부를 확인하니 5월 20일자로 제3자 앞으로 이전등기가 되어 있었고, 그 매수인은 B씨와의 계약 사실을 알면서 먼저 웃돈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 계약금만 오간 단계라면 매도인은 배액을 상환하고,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65조). 다만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하기 전까지입니다.
-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하면 이행의 착수에 해당해, 그 뒤로는 매도인이 배액을 주겠다고 해도 해약금 해제를 할 수 없습니다.
- 배액 상환은 말로만 해서는 부족하고 현실적인 이행제공이 필요합니다. 다만 상대방이 수령을 거절했다고 해서 반드시 공탁까지 해야 유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례입니다.
- 계약금을 일부만 주고받은 단계라면, 대법원은 계약금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임의로 해제할 수 없다고 보았고, 설령 해제할 수 있다고 보더라도 배액의 기준은 실제 받은 돈이 아니라 약정한 계약금 전액이라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231378 판결).
- 제2매수인 앞으로 등기가 끝나면 원칙적으로 제1매수인은 소유권을 얻지 못하고 손해배상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다만 제2매수인이 적극 가담했다면 그 매매는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로 무효가 됩니다(민법 제103조). 적극 가담의 입증 문턱은 높은 편입니다.
- 중도금이 지급된 뒤의 이중매매는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입장입니다(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
계약금 단계 — "이행에 착수하기 전"이라는 시한
- 시적 한계 — 조문은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라고 정합니다. 상대방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라도 착수하면 이 권리는 사라집니다.
- 이행의 착수 —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채무 이행의 일부를 하거나 이행에 필요한 전제행위를 한 경우로, 중도금 지급이 대표적입니다.
- 해제 방법 — 해제 의사표시와 함께 배액을 현실로 제공해야 합니다.
사례 ①의 통보 시점은 중도금 지급일 전입니다. 매수인이 아직 이행에 착수하지 않았다면 A씨가 1억 8,000만 원을 실제로 제공하며 해제를 통보하는 것은 유효하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반대로 매수인이 소식을 듣고 중도금을 먼저 넣으면 막을 수 있는지 문제 되는데, 대법원은 매도인이 해제 의사표시를 하면서 일정한 기한까지 해약금을 수령해 갈 것을 최고하는 등의 사정이 있었다면 중도금 지급기일에는 매도인을 위한 기한의 이익도 있다고 보아, 매수인이 이행기 전에 일방적으로 이행에 착수했더라도 매도인의 해제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6. 2. 10. 선고 2004다11599 판결).
중도금이 지급된 뒤 — 민사와 형사가 함께 움직입니다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중도금이 지급되는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르면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보전에 협력할 신임관계에 있게 되어 배임죄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고, 그 지위에서 목적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고 등기까지 마쳐 준 때에는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아 기존 판례를 유지했습니다.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반대의견이 있었으나 다수의견이 유지되었습니다. 이후 대법원은 동산 이중매매나 부동산 이중저당 등에서는 배임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바꾸었지만, 부동산 이중매매에 관한 위 법리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법정형 — 형법 제355조 제2항 배임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 가중처벌 —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가 적용되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인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 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됩니다. 다만 이중매매 사안에서 이득액을 어떻게 산정할지는 다투어지는 쟁점입니다.
- 기수 시점 — 다른 사람과 계약만 한 단계가 아니라, 제3자 앞으로 처분에 따른 등기가 마쳐진 때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례 ②의 B씨는 3월 2일 중도금을 지급했으므로 그때부터 매도인은 임의로 계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만 형사 절차의 결론은 매도인의 인식과 처분 경위, 해제 사유의 유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고소만으로 결과가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이미 등기가 넘어갔다면
- 원칙 — 부동산 물권변동은 등기로 이루어지므로 제2매수인이 등기를 마치면 소유권을 취득하고, 제1매수인의 이전등기청구권은 이행불능이 됩니다.
- 배상 범위 — 통상 이행불능 당시의 시가를 기준으로 하되 미지급 대금은 공제됩니다. 구체적 액수는 감정과 입증에 따라 달라집니다.
- 예외 — 제2매수인이 매도인의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했다면 그 매매는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입니다.
- 적극 가담의 정도 — 판례는 이미 매도된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그 사실을 알면서 매도를 요청해 계약에 이르는 정도여야 한다고 봅니다.
- 청구 방법 — 제1매수인은 아직 소유자가 아니어서 직접 말소를 구할 수 없고, 매도인을 대위해 말소등기를 청구합니다.
사례 ②에서 제3자가 먼저 웃돈을 제안했다는 정황은 적극 가담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통화 녹음, 문자, 중개인 진술처럼 경위를 확인할 증거가 없다면 "알고 있었다"는 주장만으로 무효 판단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등기가 넘어가기 전에 막는 방법
-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 계약서와 대금 입금내역으로 피보전권리를 소명해 신청합니다. 법원이 담보 제공을 명하는 경우가 많고, 사안에 따라 그 일부 또는 전부를 지급보증위탁계약 체결 문서 제출로 갈음하도록 허용하기도 합니다.
-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 — 매도인의 협력을 받아 마쳐두면 순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 등기부 재확인 — 중도금과 잔금을 보내기 직전에 반드시 다시 발급받아 확인합니다.
이런 대응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 매도인이 배액을 준비하지도 않고 통보만 한 뒤 해제됐다고 주장하는 경우 — 해제 효력 없이 이행지체 책임만 떠안을 수 있습니다.
- 매수인이 매도인이 보낸 배액을 그대로 수령하는 경우 — 해제에 동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 이후 소유권 이전이나 시세차익 상당의 배상을 주장하기 어려워집니다.
- 등기가 넘어간 뒤에 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하는 경우 — 실익이 사실상 없습니다.
- 형사 고소만으로 부동산이 돌아온다고 기대하는 경우 — 배임죄가 유죄로 확정되어도 그 자체로 제2매수인의 등기가 말소되지는 않습니다.
- 제2매수인을 찾아가 각서를 요구하거나 점유를 방해하는 경우 — 별건의 형사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매도인의 마음이 바뀐 것 같은데 중도금을 앞당겨 넣으면 막을 수 있나요?
매도인이 아직 해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중도금 지급은 이행의 착수가 되어 해약금 해제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매도인이 이미 해제를 통보하고 기한을 정해 배액 수령을 최고한 뒤라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계약금 9,000만 원 중 1,000만 원만 냈는데 매도인이 2,000만 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대법원은 계약금의 잔금이나 전부가 지급되지 않은 이상 계약금계약이 성립하지 않아 당사자가 임의로 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고 보았고, 설령 해제할 수 있다고 보더라도 해약금의 기준은 실제 교부액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라고 판단했습니다(2014다231378). 실제 받은 돈의 배액만으로 해제할 수 있다면 계약의 구속력이 사실상 사라진다는 이유입니다. 이 사안에서 2,000만 원 상환만으로 해제 효력을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
Q. 제2매수인이 이중매매인 줄 알고 샀으면 무효인가요?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판례는 그 사실을 알면서 매도를 요청해 계약에 이르는 정도의 적극 가담을 요구합니다. 시세를 크게 웃도는 가격, 이례적으로 서두른 등기, 매도인과의 특수관계 등이 판단 자료가 됩니다.
Q. 손해배상만 받게 된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
이행불능 당시의 시가에서 미지급 대금을 뺀 금액이 기준이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위약금 약정이 있으면 그 조항이 함께 검토되고 감액이 다투어지기도 합니다. 사안마다 결론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Q.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 중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요?
등기 회복이 목표라면 처분금지가처분과 민사 소송이 급합니다. 형사 절차는 수사기록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두 절차의 순서와 시효는 사건 구조에 따라 달라집니다.
체크리스트
- 계약서의 중도금·잔금 지급일과 해약금·위약금 특약 조항을 확인합니다.
- 계약금과 중도금의 계좌이체 내역, 영수증, 문자·메신저 대화를 원본 형태로 보존합니다.
-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발급해 소유권·가등기·가압류 변동과 발급 날짜를 기록합니다.
- 매도인의 해제 통보는 서면이나 내용증명으로 받아두고 배액이 실제 제공됐는지 남깁니다.
- 이상 징후가 보이면 즉시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을 검토합니다.
- 제2매수인과 매도인의 관계, 거래 가격, 중개 경위 등 적극 가담 정황을 정리합니다.
-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 고소의 순서·소멸시효를 함께 점검합니다.
이중매매는 대금이 어느 단계까지 오갔는지, 등기가 이미 넘어갔는지, 제2매수인의 관여 정도가 어떠한지에 따라 대응 경로가 완전히 갈립니다. 등기부에서 이상을 발견한 시점부터는 하루가 처분 가능성과 직결되므로 증거 확보와 보전처분 검토를 동시에 진행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해약금 해제의 가능 시점과 이중매매의 무효 여부는 계약서 문언, 대금 지급 경위, 상대방의 인식 정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