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하는 동안에는 "급한 데 쓰고 금방 줄게"라는 말 한마디에 계좌번호만 받고 돈을 보내는 일이 흔합니다. 차용증을 쓰자고 하면 사이가 어색해질 것 같고, 무엇보다 상대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헤어진 뒤 돈 이야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비슷합니다. 사귈 때 네가 준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 순간부터 같은 송금 내역이 한쪽에게는 빌려준 돈, 다른 쪽에게는 받은 선물이 되고, 법원은 둘 중 어느 쪽인지를 남아 있는 기록으로 가립니다.
이 글에서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법원의 판단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송금 사실만으로는 왜 대여가 인정되지 않는지, 법원이 메시지·송금 메모·송금의 반복성·일부 상환 같은 정황으로 대여와 증여를 어떻게 가르는지, 데이트 비용과 고가 선물은 왜 돌려받기 어렵고 어떤 예외가 있는지, 실제 회수 절차와 사기죄 고소가 가능한 경우, 그리고 연인 관계를 가장한 로맨스 스캠은 왜 처음부터 다른 길로 가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
상담 사례
사례 ① "보증금 빌려줌"이라고 적어 보냈는데 선물이라고 합니다
직장인 A씨는 2023년 11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연인과 교제했습니다. 2025년 3월, 상대가 이사할 전셋집 보증금이 모자란다고 하자 A씨는 1,800만원을 송금하면서 받는 사람 메모에 "보증금 빌려줌"이라고 적었습니다. 다음 날 상대는 메신저로 "정말 고마워, 적금 만기 되는 내년 2월에 꼭 갚을게"라고 보냈고, 2025년 8월에는 "보증금 일부"라는 메모와 함께 200만원을 돌려보냈습니다. 이와 별도로 A씨는 2년 가까이 매달 40만원씩 두 사람이 함께 쓰는 데이트 통장에 돈을 넣었고, 2025년 생일에는 320만원짜리 시계를 선물했습니다. 헤어진 뒤 상대는 A씨도 자주 와서 지낸 집이니 보증금은 같이 낸 셈이라며 나머지 1,600만원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A씨는 보증금 잔액은 물론 시계와 데이트 비용 절반까지 돌려받고 싶어 합니다.
사례 ②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연인에게 다섯 번 송금했습니다
B씨는 2025년 12월, SNS 메시지로 자신을 해외 파견 엔지니어라고 소개한 사람과 연락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안부를 주고받으며 연인처럼 지냈지만, 영상통화는 매번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몇 초 만에 끊겼습니다. 2026년 2월부터 4월 사이 B씨는 "귀국 짐 통관 비용", "함께 쓰는 거래소 투자금" 명목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모두 3,700만원을 보냈고, 받는 계좌의 명의는 매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4월 말 상대의 계정이 사라지자 B씨는 연인에게 빌려준 돈이라며 대여금 소송부터 준비하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 송금 기록만으로는 빌려준 돈이 되지 않습니다. 상대가 증여라고 다투면,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반환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합니다. 연인 사이라는 이유로 이 부담이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 법원은 돈을 보낼 무렵의 기록을 가장 무겁게 봅니다. "갚을게" 같은 메시지, "빌려줌" 같은 송금 메모, 일부 상환 내역, 돈의 용도와 액수가 한 방향을 가리키면 대여로 인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 매달 반복된 소액 송금과 데이트 비용은 대체로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교제 중 함께 쓰거나 상대의 생활을 돕기 위한 지출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이미 건넨 선물은 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서면 없는 증여라도 이미 이행된 부분은 해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결혼을 전제로 주고받은 약혼예물처럼 조건이 붙은 증여는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 처음부터 갚을 생각 없이 거짓말로 빌렸다면 사기죄가 문제 됩니다. 나중에 못 갚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사기가 되지 않고, 빌릴 당시의 변제 의사와 능력이 기준입니다.
- 로맨스 스캠은 대여금 사건이 아니라 사기 피해 사건입니다. 상대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소송보다 수사기관 신고와 금융회사에 대한 지급정지 요청이 먼저입니다.
송금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 증명책임의 구조
- 대여와 증여는 반환 약속에서 갈립니다 — 민법상 소비대차는 돈을 건네고 상대가 같은 금액을 돌려주기로 약정할 때 성립하고, 증여는 대가 없이 재산을 주기로 합의할 때 성립합니다. 두 경우 모두 돈이 옮겨간다는 점은 같으므로, 송금 사실 자체는 어느 쪽인지 말해 주지 않습니다.
- 증명책임은 빌려줬다고 주장하는 쪽에 있습니다 — 대법원은 돈이 오간 사실에 다툼이 없더라도 상대가 소비대차를 부인하면, 그 돈이 대여로 건너갔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 증여라는 주장도 기록과 맞아야 합니다 — 법원은 상대가 내세우는 사정이 객관적 기록과 어긋나는지도 함께 봅니다. 증여라는 해명이 송금 당시의 대화와 정면으로 맞지 않으면, 그 어긋남 자체가 대여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 교제 관계는 양쪽으로 작용합니다 — 연인 사이에는 대가 없이 돈을 주는 일이 흔하다는 점에서 증여로 볼 여지가 넓어지는 반면, 차용증을 쓰기 어려운 관계라는 점 때문에 메시지 같은 간접 증거의 비중이 커집니다.
사례 ①의 A씨는 이 구조에서 유리한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송금 메모에 "빌려줌"이라고 적었고, 바로 다음 날 상대가 상환 시기까지 특정해 갚겠다고 답했으며, 실제로 "보증금 일부"라는 메모와 함께 200만원을 돌려보냈습니다. 돈을 보낼 무렵의 기록, 상대의 반환 약속, 일부 상환이라는 세 가지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입니다. 상대가 뒤늦게 내세우는 "같이 지낸 집"이라는 주장은, A씨가 그 집의 임차인이 아니고 함께 살기로 한 사정도 없다면 송금 당시의 대화와 맞지 않는 사후 해명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큽니다.
법원이 대여와 증여를 가르는 기준 — 메시지·송금 메모·반복성
- 송금 당시의 메시지 — "빌려줘", "갚을게", "다음 달 월급 받으면 줄게"처럼 반환을 전제로 한 표현이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상환 시기나 방법까지 언급되어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반대로 "이거 너 써", "선물이야" 같은 말이 남아 있으면 대여 주장은 크게 약해집니다.
- 송금 메모 — 이체할 때 적은 "대여", "빌려줌", "보증금" 같은 메모는 송금 시점에 남긴 기록이어서 신빙성이 높습니다. 다만 메모는 보내는 쪽이 혼자 적는 것이므로, 상대가 그 메모를 보고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정황과 함께 제시될 때 힘을 얻습니다.
- 반복성과 액수 — 매달 비슷한 소액이 정기적으로 오갔다면 생활비나 용돈, 데이트 비용으로 보기 쉽습니다. 반면 특정 목적을 위해 한 번에 목돈이 건너갔다면 대가 없이 준 것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보낸 사람의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큰 금액이라는 점도 증여 주장을 약하게 만드는 사정으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 돈의 용도 — 상대 개인의 보증금, 대출 상환, 카드값, 사업자금처럼 상대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용도였는지, 두 사람이 함께 쓰는 비용이었는지가 함께 검토됩니다.
- 일부 상환과 이별 후의 대화 — 상대가 일부라도 갚은 기록이 있으면 대여였다는 강한 정황이 됩니다. 헤어진 뒤 "돈은 정리해서 보낼게", "조금씩 갚을게"라고 답한 기록도 법원이 비중 있게 봅니다.
- 교제의 모습과 경제 사정 — 교제 기간, 동거 여부, 평소 비용을 어떻게 나눠 냈는지, 두 사람의 소득 수준도 종합 판단의 재료가 됩니다.
이 기준을 사례 ①에 적용하면 결론이 항목별로 갈립니다. 보증금 1,800만원은 단발성 목돈이고, 상대의 개인 주거를 위한 용도였으며, 메시지·메모·일부 상환이 모두 갖춰져 있어 잔액 1,600만원은 대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2년간 매달 40만원씩 넣은 데이트 통장은 정기적인 소액이고 두 사람이 함께 쓴 돈이라는 점에서 대여로 보기 어렵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상대에게 보낸 돈이라도 송금마다 따로 판단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데이트 비용과 선물 — 돌려받기 어려운 이유와 예외
- 데이트 비용 — 함께 식사하고 여행하며 쓴 돈은 그때그때 소비된 것이어서 어느 한쪽의 이득으로 남아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한쪽이 더 많이 냈다는 사정만으로 차액 반환을 구하는 청구는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 이미 건넨 선물 — 선물은 증여입니다. 민법상 서면으로 표시하지 않은 증여는 해제할 수 있지만,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해제의 효력이 미치지 않습니다(민법 제555조, 제558조). 시계나 가방을 이미 건넸다면 헤어졌다는 이유로 돌려달라고 할 근거가 마땅치 않습니다.
- 아직 건네지 않은 약속 — 반대로 "다음 달에 차 사 줄게"처럼 말로만 약속하고 아직 이행하지 않았다면, 서면이 없는 한 그 약속은 해제할 수 있습니다.
- 결혼을 전제로 한 예물 — 대법원은 약혼예물의 수수를 혼인이 성립하지 않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비슷한 성질로 보아, 혼인이 무산되면 반환을 구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약혼 해제에 책임이 있는 쪽은 자신이 준 예물을 적극적으로 돌려달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결혼 약속이 없는 연인 사이의 생일·기념일 선물에는 이 법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 명의가 내게 남아 있는 물건 — 내 명의로 등록된 차량이나 내 이름으로 계약한 물건을 상대가 쓰고 있을 뿐이라면, 소유자로서 반환을 구할 여지가 있습니다. 상대가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다투더라도 등록 명의를 넘기지 않았다면 증여의 이행이 끝났는지부터 다시 따져 볼 수 있으므로, 명의와 대금 납부 기록이 핵심 증거가 됩니다.
- 고액 증여의 세금 문제 — 연인처럼 친족이 아닌 사람 사이에는 증여재산공제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고액의 돈이 증여로 정리되면 받은 쪽에게 증여세 문제가 따로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반환청구와는 별개의 세무 쟁점입니다.
사례 ①에서 A씨가 생일에 건넨 320만원짜리 시계는 이행이 끝난 증여이므로 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돌려받기는 어렵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고 예물로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면 약혼예물 법리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데이트 통장에 넣은 돈 역시 함께 쓴 비용이어서 절반을 청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헤어질 무렵 그 통장에 쓰지 않은 잔액이 남아 있고 통장이 상대 명의라면, 남은 돈 가운데 A씨가 넣은 몫의 정산을 요구해 볼 여지는 있습니다. A씨는 청구 범위를 보증금 잔액 1,600만원과 그 지연손해금으로 좁히는 편이 설득력과 비용 면에서 모두 낫습니다. 받기 어려운 항목까지 한꺼번에 청구하면 재판부에 헤어진 뒤 모든 지출을 되돌려 받으려는 청구라는 인상을 주어, 정작 근거가 탄탄한 청구의 무게까지 흐려질 수 있습니다.
돌려받는 절차 — 내용증명에서 소송·사기 고소까지
- 대화 기록 보전 — 메신저 대화는 날짜와 상대 계정이 보이도록 화면을 저장하고, 가능하면 대화 내보내기 파일로도 남겨 둡니다. 상대가 대화방을 나가거나 계정을 지워도 내 기기에 남은 기록은 증거가 됩니다. 본인이 참여한 대화나 통화를 녹음하는 것은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녹음 파일을 주변에 퍼뜨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증거로만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 반환 요청과 기한 지정 — 갚을 날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면, 민법상 빌려준 사람은 상당한 기간을 정해 반환을 요구해야 합니다. 문자나 내용증명으로 금액과 기한을 특정해 요청해 두면, 이후 지연손해금 계산과 소송에서 기준점이 됩니다.
- 지급명령 — 상대가 대여 사실 자체는 크게 다투지 않을 것 같다면 지급명령이 빠르고 비용도 적습니다. 다만 상대가 지급명령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면 일반 소송으로 넘어갑니다.
- 소액사건과 일반 소송 — 소를 제기할 때의 청구액이 3,000만원 이하인 금전 청구는 소액사건심판 절차로 비교적 간이하게 진행됩니다. 3,000만원이 넘는 돈을 소액사건으로 처리하려고 일부만 나눠 청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상대가 증여라고 다툴 것이 분명하다면 처음부터 증거를 정리해 소송으로 가는 편이 시간을 줄입니다.
- 가압류 — 상대가 예금이나 보증금 반환채권 같은 재산을 처분할 우려가 있으면 소송 전에 가압류를 검토합니다. 승소해도 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판결문만 남기 때문입니다.
- 사기죄 고소 — 빌릴 당시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 거짓 사유를 대고 돈을 받았다면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결혼할 것처럼 속여 돈을 받아 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빌릴 때는 갚을 생각과 능력이 있었고 이후 사정이 나빠져 못 갚은 것이라면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그칩니다.
- 소멸시효 — 개인 사이의 대여금 채권은 일반적으로 10년의 소멸시효에 걸립니다(민법 제162조 제1항). 시간이 충분해 보여도 기억과 기록은 빨리 흐려지므로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사례 ①의 A씨라면 2026년 2월로 약속했던 상환일이 이미 지났다는 점을 짚어 잔액 1,600만원의 반환을 내용증명으로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소액사건으로 청구하는 순서가 자연스럽습니다. 상대가 그 전셋집에 계속 살고 있다면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채권이 가압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돈이 실제로 보증금에 쓰였고 일부 상환까지 있었다면 빌릴 당시 속일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사기죄 고소는 실익이 적습니다. 수사기관도 이런 사안은 민사 분쟁으로 볼 가능성이 높고, 형사 고소는 민사 청구를 대신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맨스 스캠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 대표적인 징후 — 직접 만난 적이 없고, 영상통화를 피하며, 해외 파견·군인·의사 같은 신분을 내세우고, 통관비·수수료·투자금 명목으로 송금을 요구하며, 받는 계좌의 명의가 본인이 아니거나 매번 바뀝니다. 이 가운데 여러 개가 겹친다면 연인 사이의 금전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인 사기를 의심해야 합니다.
- 대여금 소송이 막히는 이유 — 소송은 상대의 실명과 주소를 알아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메신저 계정과 프로필 사진만 아는 상대를 피고로 특정하기는 사실상 어렵고, 이름과 사진 자체가 도용된 경우도 많습니다.
- 먼저 할 일은 신고와 지급정지 요청 — 송금한 금융회사와 경찰에 즉시 피해를 알리고 받은 계좌의 지급정지를 요청합니다. 돈이 다른 계좌로 옮겨지기 전에 묶는 것이 회수 가능성을 좌우합니다.
- 지급정지에는 제도상 한계가 있습니다 — 보이스피싱 피해를 구제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용역 거래를 가장한 사기를 적용 대상에서 빼고 있어, 투자나 물품 거래 형태를 띤 로맨스 스캠은 금융회사가 지급정지를 거절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26년 3월 금융당국이 이런 신종 사기에도 경찰 확인을 거쳐 지급정지와 환수가 이뤄지도록 업무 기준을 정비하겠다고 밝혔고, 다중피해사기를 따로 규율하는 법률 제정도 추진되어 왔습니다. 다만 새 법률은 추진 단계로 알려져 있어 아직 시행 중인 제도로 보기는 어렵고, 업무 기준도 바뀌는 중이므로 신고하는 시점에 어떤 기준이 적용되는지는 금융회사와 수사기관에 확인해야 합니다.
- 수사 이후의 회수 경로 — 범인이 검거되어 형사재판이 열리면 그 재판에서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고,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검토되기도 합니다. 다만 명의인에게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를 따져야 하므로 결론은 사안마다 다릅니다.
사례 ②의 B씨는 대여금 소송부터 준비하려 하지만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직접 만난 적이 없고, 영상통화를 피했으며, 통관비와 투자금 명목으로 매번 다른 명의의 계좌에 송금하게 한 정황은 로맨스 스캠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B씨가 아는 것은 메신저 계정뿐이어서 소장에 피고를 적을 수조차 없습니다. 가장 먼저 송금한 은행과 경찰에 피해를 신고해 다섯 개 수취 계좌의 지급정지를 요청하고, 대화 기록 전체와 이체 내역을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합니다. 수사를 통해 계좌 명의인과 범행 가담자가 밝혀지면 그때 민사 청구의 상대를 정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송금에서 이미 여러 달이 지났으므로, 계좌에 남은 돈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대응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 상대의 직장이나 가족에게 돈 문제를 알리거나 SNS에 사진과 실명을 올려 폭로하는 것 — 정당한 채권이고 사실을 적었더라도 명예훼손 책임을 질 수 있고, 협상에서도 오히려 불리해집니다.
- 답이 없다는 이유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연락하거나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 — 상대가 원하지 않는 연락과 접근이 반복되면 스토킹 범죄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 갚지 않으면 사진이나 사생활을 퍼뜨리겠다는 식으로 불이익을 예고하며 독촉하는 것 — 받을 돈이 있더라도 협박이나 공갈이 될 수 있습니다.
- 상대 집에 들어가 예전에 준 선물이나 물건을 가져오는 것 — 법원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자력구제는 허용되지 않고, 주거침입이나 절도 문제가 생깁니다.
- 로맨스 스캠이 의심되는데도 돈을 돌려받으려면 수수료를 더 내야 한다는 요구에 응하는 것 — 피해 회복을 미끼로 한 추가 송금 요구는 같은 사기의 연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차용증이 없으면 소송에서 이길 수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차용증은 가장 확실한 증거일 뿐 소비대차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이 아닙니다. 연인 사이에서는 차용증 없이도 메신저 대화, 송금 메모, 일부 상환 내역으로 대여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그런 기록조차 없고 말로 빌려줬다는 주장만 있다면, 상대가 증여라고 다툴 때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습니다.
Q. 헤어진 뒤 상대가 갚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습니다.
그 메시지는 지워지기 전에 반드시 보관하십시오. 이별 후 상대가 갚겠다고 한 말은 그 돈이 빌려준 것이었다는 사실을 상대 스스로 인정한 정황으로 평가될 수 있고, 소멸시효 측면에서도 채무를 승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상대가 나중에 미안해서 한 말이었다고 해명하더라도, 송금 당시의 기록과 함께 보면 상당한 무게를 갖습니다.
Q. 몇 년에 걸쳐 수십 번 보낸 돈을 한꺼번에 청구할 수 있나요?
청구 자체는 할 수 있지만, 법원은 송금마다 성격을 따로 따집니다. 사례 ①처럼 목돈 한 건은 대여로 인정되고 정기적인 소액은 생활비나 데이트 비용으로 판단되는 식으로 결론이 나뉘는 경우가 흔합니다. 송금 내역을 날짜·금액·메모·관련 대화로 정리한 표를 만들어, 대여 근거가 분명한 건부터 추려 내는 것이 좋습니다.
Q. 상대가 해외에 있다고 하는데 청구할 수 있나요?
실제로 만나 교제했던 사람이고 이름과 연락처, 주소를 안다면, 상대가 해외에 있다는 사정만으로 청구가 막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송달과 집행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만난 적 없이 해외에 있어서 송금이 막혔다는 말만 반복하는 상대라면 사례 ②와 같은 로맨스 스캠부터 의심해야 합니다.
체크리스트
- 교제 기간의 송금 내역을 은행에서 내려받아 날짜·금액·메모·용도를 한 표로 정리합니다.
- 송금 전후의 메신저 대화 가운데 빌려 달라는 요청, 갚겠다는 약속, 상환 시기가 언급된 부분을 찾아 날짜와 계정이 보이게 저장합니다.
- 상대가 일부라도 갚은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그 송금 메모까지 함께 보관합니다.
- 데이트 비용과 이미 건넨 선물은 청구 대상에서 빼고, 대여 근거가 분명한 목돈 위주로 청구 범위를 정합니다.
- 금액과 기한을 특정해 반환을 요청하고, 응답이 없으면 지급명령이나 소액사건 등 절차를 선택합니다.
- 상대가 재산을 처분할 우려가 있으면 소송 전에 가압류를 검토합니다.
- 만난 적 없는 상대에게 송금했고 받는 계좌의 명의가 상대와 다르다면, 소송보다 금융회사와 경찰에 신고해 지급정지를 요청하는 일을 먼저 합니다.
연인 사이의 돈은 보낼 때는 믿음으로 오가지만, 헤어진 뒤에는 기록으로만 판단됩니다. 법원은 돈이 건너갔다는 사실보다 그 돈을 보낼 무렵 두 사람이 무엇을 약속했는지를 묻고, 그 답은 대부분 메신저 대화와 송금 메모, 일부 상환 내역 속에 남아 있습니다. 빌려준 돈과 선물을 스스로 먼저 구분해 청구 범위를 좁히고,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상대에게 보낸 돈이라면 소송이 아니라 신고부터 하는 것이 돈을 되찾는 가장 현실적인 순서입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연인 사이에 오간 돈이 대여인지 증여인지, 사기 피해로 지급정지를 받을 수 있는지는 송금 경위와 남아 있는 기록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지므로, 구체적 사안은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