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후배의 부탁으로 거래약정서 맨 아래 칸에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서류를 썼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는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회사에서 내용증명이 옵니다. 청구액은 1억 원이 넘고 주채무자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보증 상담은 대체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서명하던 순간에는 아무 부담이 없었고, 문제가 터진 시점에는 협상할 상대가 없습니다.
보증은 다른 계약보다 훨씬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고, 채권자에게도 적지 않은 의무를 지웁니다. 이 글에서는 보증이 서면으로만 성립한다는 민법 제428조의2와 근보증의 최고액 서면 특정 의무, 연대보증인에게 최고·검색의 항변권이 없다는 점, 채권자의 정보제공·통지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 감경, 보증기간과 근보증 해지, 대신 갚은 뒤의 구상권과 변제자대위, 개인 채권자와 금융기관 보증의 차이를 차례로 봅니다.
상담 사례
사례 ① 거래약정서에 이름만 올린 경우
A씨는 2023년 3월 후배의 인테리어 업체를 위해 자재상과의 계속거래약정서에 연대보증인으로 서명했습니다. 약정서에는 "본 거래로 발생하는 일체의 채무를 연대보증한다"고만 적혀 있었고 한도 금액은 없었습니다. 2026년 5월 자재상은 미수금 1억 2,0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청구했습니다.
사례 ② 이사에서 사임했는데 보증만 남은 경우
B씨는 2021년 6월 친형의 법인에 사내이사로 등재되면서 은행 운전자금 한도대출 3억 원에 보증한도액 3억 6,000만 원의 근보증을 섰습니다. 2023년 3월 사임하고 지분도 정리했지만 은행에는 통지하지 않았습니다. 2026년 4월 법인이 부도나자 은행은 B씨에게 3억 4,00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 보증은 보증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있는 서면으로 표시되어야 효력이 생깁니다(민법 제428조의2 제1항). 구두 약속이나 문자·메신저 같은 전자적 형태의 의사표시는 효력이 없습니다.
- 장래의 불특정 채무를 보증하는 근보증은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해야 하고, 특정하지 않은 보증계약은 효력이 없습니다(제428조의3).
- 연대보증인에게는 최고·검색의 항변권이 없습니다(제437조 단서). "주채무자에게 먼저 청구하라"는 주장이 통하지 않습니다.
- 채권자가 신용정보 제공의무나 3개월 이상 연체 통지의무를 위반해 손해를 입혔다면 법원은 위반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보증채무를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습니다(제436조의2).
- 보증인보호법이 적용되면 기간 약정이 없는 보증은 3년으로 봅니다(같은 법 제7조). 다만 이 법은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과 관련된 타인의 채무를 보증한 경우와 기업의 대표자·이사·무한책임사원·과점주주 등이 그 기업 채무를 보증한 경우를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므로(제2조 제1호), 사례 ①과 ② 모두 이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서면과 최고액 — 형식을 갖추지 못한 보증은 무너집니다
- 서면성 — 보증 의사는 보증인 본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있는 서면에 표시되어야 하고, 전자적 형태로 표시된 보증 의사는 효력이 없습니다. 법원은 이 방식 요건을 엄격하게 봅니다.
- 불리한 변경도 서면 — 한도 증액이나 기간 연장처럼 보증인에게 불리한 변경도 같은 방식을 갖춰야 합니다(제428조의2 제2항).
- 근보증 최고액 — 계속적 거래에서 생기는 불특정 채무를 보증할 때는 최고액이 서면에 특정돼야 합니다.
- 적용 시점 — 이 방식 규정은 2016년 2월 4일 이후 체결하거나 갱신한 보증계약에 적용됩니다. 그 전 계약이라면 방식 하자 주장을 그대로 쓰기 어렵습니다.
사례 ①의 A씨는 최고액 없이 "일체의 채무"라고만 적힌 근보증 서면에 서명했으므로 계약 자체의 효력을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다만 채권자는 특정 채무를 보증한 것이라고 다툴 수 있어 결론은 약정서 문언과 거래 경위에 달려 있습니다. 반면 사례 ②는 보증한도액이 명확해 방식 요건을 문제 삼기 어렵고 다른 쟁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연대보증인이 잃는 항변, 그래도 남는 항변
- 최고의 항변 — 단순보증인은 "주채무자에게 먼저 청구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연대보증인은 할 수 없습니다.
- 검색의 항변 — 주채무자에게 자력이 있고 집행이 쉽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 분별의 이익 없음 — 여러 명이 연대보증을 섰어도 각자 전액을 책임지며, 채권자는 자력이 가장 좋은 한 사람에게 전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남는 항변 — 주채무의 소멸시효 완성, 변제·상계 등 주채무 자체의 소멸, 방식 하자, 근보증 해지 이후 발생한 채무라는 항변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보증채무는 주채무에 종속하므로 주채무가 시효로 소멸하면 보증채무도 소멸합니다. 사례 ①의 자재 대금이 상인이 판매한 상품의 대가라면 민법 제163조 제6호의 3년 단기소멸시효가 실질적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시효는 개별 거래의 대금마다 따로 진행하므로 미수금 전액이 한꺼번에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주채무자가 회생이나 파산으로 면책을 받아도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보증인의 책임은 그대로 남습니다.
채권자의 정보제공·통지의무와 보증책임 감경
- 체결 시 정보제공 — 채권자는 계약 체결 여부나 내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채무자의 채무 관련 신용정보를 보유하거나 알고 있으면 알려야 하고, 갱신할 때도 같습니다.
- 연체 통지 — 주채무자가 원본·이자·위약금·손해배상 등을 3개월 이상 이행하지 않는 경우, 이행기에 이행할 수 없음을 미리 안 경우, 신용정보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음을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알려야 합니다.
- 조회권 — 보증인이 청구하면 채권자는 주채무의 내용과 이행 여부를 알려야 합니다.
- 위반의 효과 — 이를 위반해 보증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법원이 위반의 내용과 정도를 고려해 보증채무를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습니다.
사례 ②에서 법인이 2024년부터 연체했는데 은행이 통지하지 않았다면, 제때 통지받았을 경우 조기 대응으로 손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감경을 구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자동 면제가 아니라 법원의 재량이고 손해와 인과관계를 보증인이 밝혀야 합니다. 금융기관이 채권자인 경우 보증인보호법은 1개월 이상 연체라는 더 짧은 통지 기준과 계약 체결 시 신용정보 제시 의무를 두지만, 이는 그 법의 보호 대상인 보증인에게만 적용됩니다. 그 밖의 보증과 개인 간 보증은 민법 제436조의2가 기준입니다.
보증기간과 근보증 해지, 그리고 대신 갚은 뒤
- 기간 3년 — 보증인보호법이 적용되는 보증에서 기간 약정이 없으면 3년으로 보고, 갱신 시 약정이 없으면 계약 체결 당시의 기간으로 봅니다. 간주되는 기간은 채권자가 계약을 체결하거나 갱신할 때 보증인에게 고지해야 합니다. 앞서 본 적용 제외 사유에 해당하면 이 규정을 원용할 수 없습니다.
- 근보증 해지 — 계속적 보증에서 이사 사임처럼 보증 당시 전제된 지위에 현저한 변화가 생겨 계속 책임을 지우는 것이 신의칙에 비추어 상당하지 않다면, 채권자에게 신의칙상 묵과할 수 없는 손해를 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래를 향해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판례는 보증한도액과 보증기간이 정해져 있더라도 해지권 발생에 영향이 없다고 봅니다. 다만 채무액과 변제기가 특정된 확정채무를 보증한 경우에는 사임을 이유로 한 해지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해지 의사가 채권자에게 도달해야 하고, 그 전에 발생한 채무에는 책임이 남습니다.
- 구상권 — 주채무자의 부탁으로 보증한 사람이 변제하면 구상할 수 있고, 면책된 날 이후의 법정이자와 피할 수 없는 비용도 포함됩니다(제441조, 제425조 제2항). 자기 부담 부분을 넘어 변제했다면 다른 연대보증인에게도 초과분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제448조).
- 변제자대위 — 보증인은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로서 채권자를 법정대위해, 채권자가 갖고 있던 채권과 담보에 관한 권리를 구상권 범위에서 행사할 수 있습니다(제481조, 제482조).
사례 ②의 B씨가 2023년 3월 사임 당시 내용증명으로 근보증 해지를 통지했다면 그 이후 실행된 여신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툴 여지가 있었습니다. 통지하지 않았더라도 사임 시점과 경위를 입증해 해지 주장을 시도해 볼 수는 있으나, 인정 여부는 계약 문언과 개별 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변제 전후로 주채무자에게 통지하지 않으면 구상권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갚기 전에 서면으로 알리고 영수증과 이체 내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대위할 담보가 저당권이라면 미리 대위의 부기등기를 하지 않으면 이후 저당물에 권리를 취득한 제3자에게 대위하지 못합니다(제482조 제2항 제1호).
이런 대응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 "성의라도 보이자"며 일부를 먼저 송금 — 민법 제428조의2 제3항에 따라 이행한 한도에서 방식 하자를 이유로 무효를 주장할 수 없게 되고, 채무 승인으로 소멸시효가 새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 채권자에게 각서나 확인서를 써주는 것 — 형식이 부족했던 보증을 보완해 주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 사임·지분 정리만 하고 해지 통지를 하지 않는 것 — 등기부에서 이름이 빠져도 보증계약은 살아 있습니다.
- 지급명령이나 소장을 받고 무대응 — 지급명령은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이 없으면 확정되어 다툴 기회가 사라집니다.
- 재산을 배우자·자녀 명의로 급히 옮기는 것 — 사해행위취소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형사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제가 서명하지 않고 주채무자가 제 도장을 대신 찍었습니다. 효력이 있나요?
보증의 방식은 본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요구하므로 권한 없는 대리라면 원칙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건네주었거나 사후에 이의 없이 지냈다면 표현대리나 추인이 인정될 수 있어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Q. 문자메시지로 "내가 보증 서줄게"라고 보냈는데 보증이 성립하나요?
민법 제428조의2 제1항 단서는 보증 의사가 전자적 형태로 표시된 경우 효력이 없다고 정합니다. 문자나 메신저만으로 보증이 성립하기는 어렵고, 다만 서면 보증의 범위를 해석하는 자료로는 쓰일 수 있습니다.
Q. 주채무자가 개인회생이나 파산으로 면책을 받으면 저도 벗어나나요?
아닙니다. 채무자회생법은 회생계획 인가와 면책결정이 보증인에 대한 채권자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오히려 주채무자로부터 회수가 어려워진 만큼 보증인에게 청구가 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Q. 개인 간 차용증에 보증인으로 이름을 적었는데 최고액이 없습니다. 무효인가요?
확정된 특정 채무(예: 5,000만 원 대여금)를 보증한 것이라면 최고액 특정 의무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최고액의 서면 특정은 장래의 불특정 채무를 보증하는 근보증의 요건입니다.
체크리스트
- 보증계약서 사본을 채권자에게 요구해 서명·날인 형태와 최고액 기재, 계약 체결일을 확인합니다.
- 근보증이라면 최고액이 서면에 특정돼 있는지, 없다면 효력을 다툴 수 있는지 검토합니다.
- 보증 이후 한도 증액·기간 연장 등 불리한 변경에 별도 서면 동의를 했는지 확인합니다.
- 채권자에게 주채무의 내용과 이행 여부를 서면으로 조회하고 연체 시점과 통지 시점을 정리합니다.
- 주채무자와의 관계가 끝났다면 내용증명으로 근보증 해지를 즉시 통지하고 도달 증거를 남깁니다.
- 지급명령·소장을 받았다면 송달일부터 2주(이의신청) 또는 30일(답변서) 기한을 표시하고 대응합니다.
- 부득이 변제할 때는 사전·사후에 주채무자에게 통지하고 영수증과 이체 내역을 보관합니다.
보증 사건은 서명한 서류 한 장의 형식과 그 뒤 오간 통지 기록으로 결론이 갈립니다. 청구서를 받은 직후의 대응이 이후 몇 년의 부담을 좌우합니다. 이미 지급명령·소송 단계라면 서류를 챙겨 일찍 검토받으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보증은 계약서 문언, 서명 경위, 계약 체결 시점, 근보증 여부, 통지 기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계약서 원본을 지참해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