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싶어도 연락처를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피해자 보호를 이유로 인적사항을 알려주지 않고, 공소장에는 "피해자 김○○"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돈은 준비해 두었는데 보낼 계좌가 없고, 그사이 공판기일은 한 번씩 지나갑니다. 반대로 연락은 닿지만 요구 금액이 계속 올라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글은 합의가 순조롭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수단을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된 형사공탁 특례의 요건과 절차, 공탁이 양형에 반영되는 정도와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한 경우의 효과, 합의서와 처벌불원서의 차이(반의사불벌죄·친고죄에서는 공소권 자체가 좌우됩니다), 합의금 산정 시 실무에서 보는 요소, 2025년 1월 17일부터 공탁금을 함부로 돌려받을 수 없게 된 점, 그리고 2026년 7월 1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되는 수정 양형기준까지 살펴봅니다.
상담 사례
사례 ① 피해자가 연락을 받지 않는 교통사고
A씨는 2026년 3월 12일 새벽 신호를 위반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충격했고, 피해자는 전치 10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신호위반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예외 사유여서 그대로 기소됐습니다. 피해자 측은 "합의 의사가 없다"며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고, A씨는 3,000만 원을 마련해 두고도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례 ② 요구 금액이 계속 올라가는 상해 사건
B씨는 2025년 11월 회식 자리에서 동료를 밀쳐 갈비뼈 골절(전치 6주)을 입혔습니다. 피해자는 처음 800만 원을 요구하다가 검찰 송치 후 2,500만 원으로 올렸고, B씨가 1,500만 원을 제시하자 "1심 선고 직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답했습니다. B씨는 지금 공탁을 해야 할지, 선고를 앞두고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 형사공탁 특례(공탁법 제5조의2)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법원·사건번호·사건명으로 공탁할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 조문이 "형사사건의 피고인"을 전제하므로 기소되어 사건이 법원에 계속 중일 때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고, 공탁 장소는 그 법원 소재지의 공탁소입니다.
- 공탁은 합의가 아닙니다. 합의서·처벌불원서와 같은 무게로 평가되지 않으며, 반영 정도는 금액·시점·피해자 의사에 따라 갈립니다.
- 법원은 공탁이 있으면 선고 전에 피해자 등의 의견을 듣도록 되어 있어(형사소송법 제294조의5), 선고 직전의 이른바 기습공탁은 예전만큼 통하지 않습니다. 다만 피해자 등이 이미 공탁에 관해 의사를 밝혔거나 공판절차가 현저히 지연될 우려가 있는 등 대법원규칙이 정한 사정이 있으면 청취를 생략할 수 있습니다.
- 2026년 7월 1일 이후 공소가 제기된 사건부터는 수정 양형기준이 적용되어, 양형인자 명칭에서 "(공탁 포함)" 문구가 빠졌습니다. 공탁했다는 사실만으로 피해 회복이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 2025년 1월 17일 시행된 공탁법 제9조의2에 따라 형사공탁금은 원칙적으로 회수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가 회수에 동의하거나 수령 거절 의사를 공탁소에 통고한 경우, 무죄 확정이나 불기소(기소유예 제외) 결정이 있는 경우만 예외입니다.
- 반의사불벌죄·친고죄에서는 처벌불원 의사표시나 고소취소가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있어야 하고, 한 번 하면 번복할 수 없습니다.
형사공탁 특례, 어떤 요건에서 어떻게 하는가
- 대상 — 법령 등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미 주소·연락처를 알고 있다면 특례가 아니라 일반 변제공탁의 문제입니다.
- 관할 —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 소재지의 공탁소에 신청합니다.
- 공탁서 기재 — 피공탁자 인적사항 대신 법원명, 사건번호, 사건명과 공소장·조서에 적힌 피해자 특정 명칭을 쓰고, 공탁원인사실은 피해 발생 시점과 채무의 성질로 특정합니다.
- 통지 — 피공탁자에 대한 개별 통지 대신 대법원 전자공탁 홈페이지 공고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
- 수령 — 피해자는 법원이나 검찰이 발급한 동일인 확인 증명서로 신분을 확인받아 출급합니다.
사례 ①의 A씨는 기소가 되어 사건번호가 부여된 상태이므로 특례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 신분일 때는 이 특례를 쓰기 어렵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기소 전이라면 수사기관을 통해 합의 의사를 기록에 남겨 두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양형에 얼마나 반영되고, 수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공탁은 그 자체로 감형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6년 3월 전체회의에서 피해 회복 관련 양형인자를 정비해, "실질적 피해 회복(공탁 포함)"·"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에서 "(공탁 포함)" 문구를 삭제한 수정 양형기준을 확정했습니다. 이 기준은 2026년 7월 1일 이후 공소가 제기된 사건부터 적용됩니다. 돈을 맡겼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피해 회복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다만 공탁이 양형 판단에서 아예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탁으로 피해가 회복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피해자의 수령 의사, 피고인의 회수청구권 포기 의사, 피해의 성격과 정도 등을 종합해 개별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 금액 — 예상되는 손해배상액에 크게 못 미치면 참작 폭이 좁아집니다.
- 시점 — 수사 단계나 1심 초기의 공탁과 선고 직전의 공탁은 평가가 다릅니다.
- 태도 — 범행을 다투면서 공탁만 한 경우, 진지한 반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해도 공탁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무에서는 합의에 준하는 피해 회복으로 보기는 어렵더라도 유리한 정상의 하나로 제한적으로 참작하는 예가 있습니다. 반면 거부 의사가 분명하고 금액도 부족한 사안에서는 참작하지 않은 판결도 있어 결론은 갈립니다. 사례 ②의 B씨가 선고 직전에 1,500만 원만 공탁한다면, 의견 청취 절차에서 거부 의사가 드러나 기대만큼 반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는 무엇이 다른가
- 합의서 — 손해배상 조건을 정한 민사상 계약입니다. 그 자체로 형사절차를 끝내지는 않습니다.
- 처벌불원서 —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입니다. 반의사불벌죄에서는 공소기각 판결의 사유가 되고, 친고죄에서 고소가 취소되면 마찬가지로 공소기각됩니다.
- 기한 — 형사소송법 제232조에 따라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해야 하며, 그 이후의 의사표시는 효력이 없습니다. 일단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뒤 이를 번복해 다시 처벌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주의할 것은 죄명입니다. 폭행·협박·명예훼손 등은 반의사불벌죄이지만 상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례 ②가 상해로 인정되는 한 처벌불원서를 받아도 공소권 자체는 소멸하지 않고 양형 요소로만 작용합니다. 사례 ①처럼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예외에 해당하는 경우도 합의만으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습니다. 성폭력범죄는 2013년 6월 19일부터 친고죄가 폐지되어 합의가 공소 제기 여부를 좌우하지 않습니다.
합의금은 어떻게 정하고, 어떤 문구를 넣어야 하는가
- 실손해 — 치료비, 향후 치료비, 휴업손해, 간병비 등 산정 가능한 항목이 기준선이 됩니다.
- 위자료 — 범행의 방법, 피해자의 나이와 후유장해, 2차 피해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 보험 전보분 — 자동차보험 등으로 이미 지급된 부분이 있다면 형사합의금은 그 위에 얹는 성격이 됩니다.
- 돈의 성격 명시 — 합의금이 위자료인지 손해배상금의 일부 충당인지 적어 두지 않으면 나중에 민사에서 다툼이 생깁니다. 대법원은 위자료 명목으로 지급한다는 점을 명시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합의금을 재산상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지급된 것으로 보는 취지로 판단해 왔습니다.
- 부제소 문구 — "본건과 관련하여 민·형사상 일체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조항이 없으면, 처벌불원서를 받고도 별도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제소 문구가 만능은 아닙니다. 합의 당시 예상할 수 없었던 후발 손해까지 포기 효력이 미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후유장해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서는 그 범위를 어떻게 적을지가 협상의 핵심이 됩니다.
이런 대응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 선고 직전에 최소 금액만 공탁하고 감형을 기대하는 방식 — 의견 청취에서 거부 의사가 드러나면 반성이 없다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 피해자에게 직접 반복 연락하거나 가족·지인을 통해 접촉하는 행위 — 2차 가해로 평가됩니다.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는 구속 여부를 심사할 때 고려하도록 되어 있어(형사소송법 제70조 제2항)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 연락처를 알고 있으면서 특례 공탁을 시도하는 것 — 요건을 갖추지 못한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어차피 공탁하면 감형된다"며 합의금을 압박하는 언동 — 협상 태도 자체가 기록에 남습니다.
- 피해자가 여러 명인데 일부와만 합의하고 나머지를 방치하는 것.
- 구두 합의만 하고 서면을 남기지 않거나, 처벌불원서에 사건 특정과 신분 확인 자료를 빠뜨리는 것.
자주 묻는 질문
Q. 기소 전 수사 단계에서도 형사공탁을 할 수 있습니까?
특례는 "형사사건의 피고인"을 전제로 하므로 기소 전에는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인적사항을 알고 있다면 일반 변제공탁이 가능하지만, 모른다면 수사기관에 합의 의사를 밝혀 두고 기소 이후 특례를 이용하는 순서가 됩니다.
Q. 얼마를 공탁해야 합니까?
법정 기준은 없습니다. 통상 민사에서 인정될 손해배상액과 위자료를 추산해 그에 근접한 금액으로 정합니다. 사례 ①처럼 전치 10주의 상해라면 치료비와 휴업손해, 후유장해 가능성까지 계산한 근거를 함께 남기는 것이 안전합니다.
Q. 피해자가 끝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그 돈은 어떻게 됩니까?
2025년 1월 17일 시행된 회수 제한 규정 때문에 피고인이 임의로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피해자가 회수에 동의하거나 수령 거절 의사를 공탁소에 통고하지 않는 한 공탁금은 묶여 있고, 아무도 찾아가지 않은 채 오랜 기간이 지나면 결국 국고로 귀속될 수 있습니다.
Q. 무죄가 나오거나 기소유예를 받으면 돌려받을 수 있습니까?
무죄판결이 확정되거나 불기소 결정이 있으면 이를 증명해 회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소유예는 회수 사유에서 명시적으로 제외되어 있어, 기소유예를 받아도 공탁금은 돌려받지 못합니다.
Q. 1심에서 합의하지 못했는데 항소심에서 해도 의미가 있습니까?
양형 사유로는 항소심에서도 참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의사불벌죄나 친고죄에서 공소기각을 받으려면 제1심 판결 선고 전에 처벌불원 의사표시나 고소취소가 있어야 하므로, 이 부분은 기한을 넘기면 회복되지 않습니다.
체크리스트
- 죄명이 반의사불벌죄·친고죄인지 먼저 확인하고, 그렇다면 제1심 선고 전까지의 일정을 역산해 두십시오.
- 피해자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상황인지, 알고 있으나 거절당한 상황인지 구분하십시오. 이용할 제도가 달라집니다.
- 공소장·조서상의 피해자 표기, 법원명, 사건번호, 사건명을 정확히 확인해 공탁서에 반영하십시오.
- 공탁 금액은 치료비·휴업손해·위자료를 항목별로 산정한 근거 자료와 함께 정리해 두십시오.
- 공탁금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다면 회수청구권을 포기할 의사를 분명히 밝혀 두십시오. 공탁으로 피해가 회복되었는지 판단할 때 고려되는 요소입니다.
- 공탁은 선고 직전이 아니라 가능한 이른 시점에 하고, 사과문이나 피해 회복 노력을 함께 소명하십시오.
- 합의서에는 지급 방법, 돈의 성격, 처벌불원 의사, 부제소 조항, 후발 손해의 처리를 빠짐없이 적으십시오.
-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말고 변호인이나 법원·검찰의 절차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십시오.
합의와 공탁은 결과를 사는 절차가 아니라, 피해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입니다. 금액만큼이나 시점과 태도가 평가되고, 한 번 지나간 기한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사건 초기에 죄명과 일정, 피해 규모를 함께 점검해 두는 편이 결국 선택지를 넓힙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공탁 금액의 적정성과 양형 반영 정도는 죄명과 피해 정도,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