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경찰서 수사관인데 고소가 접수되어 조사를 받으러 오셔야 합니다"라는 전화를 받으면, 대부분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무슨 일인지 묻고 싶지만 자세히 알려주지 않고, 일단 언제 나올 수 있냐는 질문만 돌아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라며 해명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첫 통화와 첫 조사에서 한 말이 사건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 사건은 민사와 달리 초기 진술을 뒤집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조서에 한 번 남은 말은 나중에 "그때는 경황이 없어 잘못 말했다"고 해도 신빙성 다툼의 대상이 되고, 오히려 진술을 번복했다는 사실 자체가 불리한 사정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고소를 당한 사람(피의자) 입장에서 연락을 받은 순간부터 사건이 끝날 때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리합니다.
상담 사례
사례 ① 거래 분쟁이 사기 고소로
소규모 사업을 하면서 거래처에서 선급금을 받고 납품이 지연됐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일부를 반환했는데, 상대가 사기로 고소했다며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돈을 떼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형사 처벌을 받게 되는 건지 걱정입니다.
사례 ② 말다툼 끝의 쌍방 고소
주차 문제로 이웃과 다투다 서로 밀친 일이 있었습니다. 상대가 먼저 폭행으로 고소했고, 저도 맞았기 때문에 맞고소를 하려고 합니다.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데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정도인지,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 출석 날짜는 조율할 수 있습니다. 통보받은 날짜에 무조건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며,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 무슨 혐의인지 확인할 권리가 있습니다. 죄명과 대략적인 사건 내용을 모른 채 조사실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참여권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이며, 행사한다고 해서 불리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 사안이 단순해 보여도 사기·횡령·성범죄·업무상 과실 등은 초기 진술 하나로 결론이 갈리므로, 첫 조사 전에 변호인 상담을 권합니다.
1단계 — 출석 요구를 받았을 때
- 확인할 것 — 담당 경찰서와 수사관 이름·연락처, 죄명, 고소인이 누구인지, 사건번호. 전화로 알려주기 어렵다고 하면 출석요구서를 우편이나 문자로 받아 확인합니다.
- 날짜 조율 — 업무나 준비를 이유로 연기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당한 사유 없이 계속 불응하면 체포영장 청구 사유가 될 수 있으므로, 무응답·잠적은 최악의 선택입니다.
- 전화로 해명하지 않기 — 통화 내용도 수사보고서에 기재될 수 있습니다. "출석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 자료 보전 — 관련 문자·카카오톡·이메일·계좌 이체 내역·계약서를 삭제하지 말고 시간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유리한 자료뿐 아니라 불리한 자료도 미리 파악해 두어야 대응이 가능합니다. 증거를 지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2단계 — 조사 전 준비
조사는 "기억나는 대로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기록을 남기는 자리입니다. 준비 없이 들어가면 수사관이 묻는 순서대로 끌려가게 됩니다.
- 사실관계 연표 작성 — 날짜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근거 자료는 무엇인지 표로 정리합니다.
- 쟁점 파악 — 사례 ①의 사기 혐의라면 핵심은 "돈을 받을 당시에 갚거나 이행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가"입니다. 계약 이행을 위해 실제로 한 노력(자재 발주, 인력 투입, 부분 이행, 반환 내역)이 결정적 자료가 됩니다. 단순한 채무 불이행은 원칙적으로 민사 문제입니다.
- 변호인 선임 여부 판단 — 구속 가능성이 있거나, 진술이 곧 증거가 되는 사건(성범죄·사기·업무상 배임 등), 사실관계가 복잡한 사건은 첫 조사 전에 선임하는 것이 의미 있습니다. 기소된 뒤에 선임하면 이미 조서가 완성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 경제적 부담이 크다면 — 구속 사건 등에서는 국선변호인 제도를, 일정 요건에 해당하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의 지원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3단계 — 조사실에서
- 진술거부권 — 조사 시작 전 수사관은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과 그 취지를 반드시 고지해야 합니다. 특정 질문에만 답하지 않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전면적으로 침묵하는 것이 늘 유리하지는 않으므로, 어떤 부분을 말하고 어떤 부분을 유보할지는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 변호인 참여 — 신문 과정에 변호인을 참여시켜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참여한 변호인은 부당한 신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신문 후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 모르면 모른다고 — 기억이 불확실한데 추측으로 답하면 나중에 번복해야 합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자료를 확인해 보고 서면으로 말씀드리겠다"는 답변도 진술입니다.
- 조서 확인 — 조사가 끝나면 조서를 열람하거나 읽어 주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수정·추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의가 반영되지 않으면 서명·날인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충 읽고 서명하는 것이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 영상녹화·수기 메모 — 조사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끝난 직후 스스로 요지를 정리해 두면 이후 대응에 도움이 됩니다.
4단계 — 경찰 단계의 결론: 송치와 불송치
수사가 끝나면 경찰은 두 갈래로 결정합니다.
- 송치 —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아 사건을 검찰로 넘기는 결정입니다.
- 불송치 —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사건을 검찰로 넘기지 않고 종결하는 결정입니다. 피의자에게는 사실상 1차 무혐의에 해당합니다.
불송치가 되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고소인은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가 접수되면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 다시 검토됩니다. 또한 검사가 경찰 수사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면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어, 같은 사건으로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5단계 — 검찰 단계와 처분의 종류
- 구공판 — 정식 재판에 넘기는 기소
- 구약식 — 벌금형이 적당하다고 보아 서면 재판을 청구하는 기소. 약식명령을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혐의없음·죄가안됨·공소권없음 — 불기소 처분
- 기소유예 —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입니다. 전과(범죄경력)로 남지는 않지만 수사경력자료에는 기록이 남고, 일부 자격·인허가 심사에서 불이익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억울하다면 헌법소원 등으로 다투는 방법을 검토합니다.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쪽은 고소인이며, 항고와 재정신청 절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피의자 입장에서는 이 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합의·처벌불원서·형사공탁
많은 사건에서 결론을 실제로 바꾸는 것은 법리 다툼보다 피해 회복입니다.
- 반의사불벌죄(폭행, 협박, 명예훼손 등) —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사례 ②의 단순 폭행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친고죄 —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로, 고소 취소 시 처벌할 수 없습니다.
- 그 밖의 범죄 — 합의가 처벌을 막지는 못하지만, 기소유예·선고유예·집행유예·감형의 핵심 양형 요소로 작용합니다.
- 형사공탁 —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거나 연락처를 알 수 없을 때,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법원에 공탁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진지한 피해 회복 노력으로 참작될 수 있습니다.
합의서를 쓸 때는 대상 사건의 범위, 처벌불원 의사, 민사상 청구 포기 여부, 추가 청구 금지를 명확히 적어야 나중에 같은 사안으로 다시 분쟁이 생기지 않습니다.
맞고소는 신중하게
사례 ②처럼 "나도 맞았으니 고소하겠다"는 판단은 이해되지만, 실무상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쌍방 폭행으로 정리되면 양쪽 모두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고소하면 무고죄가 문제 될 수 있고, 무고죄는 법정형이 가볍지 않습니다. 진짜 피해가 있다면 당연히 신고해야 하지만,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한 맞고소는 위험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사받으러 갈 때 무엇을 가져가야 하나요?
신분증은 필수이고,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사본으로 정리해 가져갑니다. 원본은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으므로 사본을 남겨 두십시오. 자료 제출 여부와 시점은 전략의 문제이므로, 변호인과 상의 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변호사 없이 혼자 가도 되나요?
가능합니다. 사실관계가 단순하고 다툼의 여지가 거의 없는 경미한 사건이라면 혼자 조사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구속 가능성, 피해액 규모, 진술 외에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사건이라면 첫 조사부터 조력을 받는 편이 안전합니다.
Q. 기소유예를 받으면 전과가 남나요?
전과로 통칭되는 범죄경력자료에는 원칙적으로 유죄 확정 판결이 기록됩니다. 기소유예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지만, 수사경력자료에는 일정 기간 보존됩니다. 공무원 임용, 일부 인허가·자격 심사 등 제한적인 경우에 확인될 수 있습니다.
Q. 고소인과 직접 연락해서 합의해도 되나요?
가능하지만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건에 따라 접촉 자체가 2차 가해나 증거인멸·회유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특히 성범죄나 스토킹 사건에서는 직접 연락이 금지되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변호인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Q. 사건이 얼마나 걸리나요?
사안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단순 사건은 몇 달, 다툼이 있는 경제 사건은 1년을 넘기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보완수사, 대질조사, 추가 고소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자료를 계속 보관해야 합니다.
지금 해야 할 체크리스트
- 죄명·고소인·사건번호·담당 수사관 확인
- 출석 일정 조율 요청(무응답 금지)
- 관련 자료 원본 보전 — 삭제·수정 금지
- 날짜순 사실관계 연표와 근거자료 목록 작성
- 혐의의 핵심 쟁점 파악(예: 사기라면 편취의 고의)
- 첫 조사 전 변호인 상담 여부 결정
- 피해 회복이 가능한 사안인지, 합의·공탁 여지가 있는지 검토
- 조서 서명 전 반드시 정독하고 수정 요구
형사 사건에서 가장 비싼 실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준비 없이 조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대로 초기에 쟁점을 정확히 잡고 자료를 갖추면, 불송치나 불기소로 조기에 종결되는 사건도 많습니다. 연락을 받은 시점이 대응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형사 사건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지므로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