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 손을 다쳐 응급실에 다녀온 다음 날, 관리자가 조용히 부릅니다. 산재로 올리면 조사가 나와 시끄러워지니 회사가 치료비를 전액 대고 쉬는 동안 급여도 그대로 주겠다, 대신 산재 신청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합의서 한 장을 내밀며 오늘 안에 서명해 달라고 합니다. 거절하면 현장에서 관계가 틀어질 것 같아 상당수는 그 자리에서 도장을 찍습니다.
이 글은 공상처리 제안을 받은 시점에 확인할 것들을 순서대로 다룹니다. 회사가 공상을 권하는 실제 이유, 산재 미보고 과태료와 산재은폐 형사처벌, 건강보험으로 진료받았다가 진료비 정산·환수 문제에 걸리는 구조, 합의서를 쓴 뒤에도 산재 신청이 가능한지, 장해가 남았을 때 놓치는 장해급여·휴업급여·재요양까지 짚겠습니다.
상담 사례
사례 ① 프레스 금형 교체 중 손가락 골절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7년째 프레스를 담당해 온 40대 생산직 근로자입니다. 금형을 교체하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눌려 골절 진단과 6주 안정 소견을 받았습니다. 회사는 치료비 전액과 위로금 400만원을 주겠다며, 산재는 접수하지 않겠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요구했습니다.
사례 ② 상하차 작업 후 허리 부상
물류센터에서 2년간 상하차 업무를 해온 30대 근로자입니다. 파렛트를 옮기다 허리를 다쳐 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았고, 회사는 "산재로 처리하면 보험료가 오른다"며 800만원에 합의하자고 했습니다. 서명하고 두 달을 쉬었지만 반년 뒤 통증이 재발해 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 공상처리는 법에 없는 절차입니다. 사적 합의일 뿐이어서 산재보험 수급권을 소멸시키지 못합니다.
- 사망자가 나오거나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질병이 생기면, 사업주는 발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해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의 장에게 제출해야 합니다(산업안전보건법 제57조 제3항, 같은 법 시행규칙 제73조).
- 미보고·지연보고는 1,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하거나 은폐하도록 교사·공모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같은 법 제57조 제1항, 제170조 제3호).
- 업무상 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를 받게 되는 경우 건강보험 급여는 제한됩니다(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4호). 공상으로 덮고 건강보험으로 진료받았다가 뒤늦게 산재가 승인되면 그 기간 진료비가 정산·환수 문제로 돌아옵니다.
- 산재보험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됩니다. 근로자 1명 이상을 쓰면 원칙적으로 당연가입 대상입니다.
- 시효는 요양급여·휴업급여 3년, 장해급여는 치유된 날의 다음 날부터 5년입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2조).
회사가 공상을 권하는 이유가 늘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 보험료 할증 우려 — 실적으로 요율을 조정하는 개별실적요율은 건설업과 벌목업을 제외한 사업 중 상시근로자 30명 이상인 곳에 적용됩니다. 건설업은 상시근로자 수가 아니라 일괄적용을 받으면서 2년 전 보험연도의 총공사금액이 60억원 이상인지로 판단합니다(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제15조, 같은 법 시행령 제15조). 보험관계가 성립한 지 3년이 지나야 한다는 요건도 있습니다.
- 감독·점검 부담 — 사업주의 안전관리 의무 문제이지, 근로자가 대신 떠안을 사정이 아닙니다.
- 절차의 간편함 — 공단 심사 없이 즉시 끝나 회사에는 간단합니다. 반대로 근로자는 앞으로 생길 손해를 미리 포기하는 셈입니다.
사례 ②의 물류센터는 상시근로자가 30인에 못 미치는 위탁 운영업체였습니다. "보험료가 오른다"는 설명은 개별실적요율 대상이 아닌 곳에서는 근거가 없습니다. 사례 ①처럼 규모가 큰 공장이든 5인 미만 사업장이든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보고하지 않으면 사업주가 지는 책임, 그리고 건강보험 정산
- 미보고·은폐 — 미보고·지연보고는 1,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은폐하거나 은폐를 교사·공모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뒤쪽은 형사처벌입니다.
- 건강보험 급여 제한 — 산재보험 급여를 받게 되는 범위에서는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됩니다(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4호). 업무상 재해의 치료비는 산재보험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 제대로 밟으면 정산되는 경로 — 요양급여를 신청해 두면 공단 결정 전까지는 건강보험을 우선 적용받을 수 있고(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2조 제1항), 산재로 승인되면 두 공단 사이에서 비용이 정산됩니다(같은 법 제90조). 본인이 낸 본인일부부담금 중 요양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은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같은 법 제42조 제2항).
- 공상으로 덮으면 막히는 경로 — 산재 신청 자체를 하지 않고 건강보험으로만 처리하면 위 정산 절차를 타지 못합니다. 뒤늦게 산재가 승인될 때 그 기간의 건강보험 진료비를 두고 근로자 본인에게 부당이득 징수가 고지되는 사례가 생깁니다. 징수가 정당한지는 사안에 따라 다투어질 여지가 있지만, 다투는 부담 자체가 근로자 몫입니다.
사례 ①은 6주 소견이 나왔으니 3일 이상 휴업이 명백한 보고 대상 재해이고, "산재를 접수하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미리 받아둔 정황은 은폐 의사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공상은 근로자가 건강보험으로 진료받고 본인부담금만 회사가 보전해 주는 방식이 더 흔한데, 문제도 여기서 생깁니다. 사례 ②처럼 뒤늦게 산재를 신청하면 그 기간의 진료가 업무상 재해였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정산·환수 절차가 함께 따라옵니다.
합의서를 썼어도 산재 신청은 가능합니다
- 포기되지 않는 권리 — 산재보험 급여는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공법상 권리입니다. "산재를 신청하지 않겠다"는 약정은 회사와의 문제일 뿐, 공단에 대한 청구권까지 없애지 못합니다.
- 중복분은 조정 — 회사가 보험급여와 같은 사유로 보험급여에 상당하는 금품을 미리 지급했고 그것이 보험급여를 대체한 것으로 인정되면, 사업주가 수급권 대위(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9조)로 공단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정리됩니다.
- 시효 중단 — 업무상 재해 여부 판단이 필요한 최초의 청구를 하면, 그 시효중단 효력이 다른 보험급여에도 미칩니다(같은 법 제113조).
어려워지는 지점은 권리가 아니라 입증입니다. 공상으로 덮은 기간에는 재해 보고도, 목격자 진술도, 산업재해조사표도 남지 않습니다. 사례 ②처럼 반년이 지나 신청하면 그 작업 중 다쳤다는 사실을 근로자가 증명해야 합니다. 최초 진료기록에 업무 중 재해라는 사실과 구체적 경위가 남아 있는지가 이후를 좌우합니다.
장해가 남으면 공상과 산재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 휴업급여 —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한 기간에 1일당 평균임금의 70%가 지급됩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2조).
- 저소득 근로자 특례 — 평균임금의 70%로 계산한 1일당 금액이 최저 보상기준금액의 80% 이하이면 평균임금의 90%로 올려 계산합니다. 다만 그 90%가 최저 보상기준금액의 80%를 넘으면 8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맞춥니다(같은 법 제54조 제1항). 이렇게 산정한 휴업급여가 최저임금 일급보다 적으면 최저임금 일급이 지급됩니다(같은 조 제2항).
- 2026년 기준 금액 — 2026년 1일 최저 보상기준금액 고시액은 74,527원이지만, 2026년 최저임금 일급(시급 10,320원 × 8시간 = 82,560원)이 이보다 높습니다. 결국 2026년 휴업급여의 실질적인 하루 하한은 82,560원입니다.
- 장해급여 — 치유 후 장해가 남으면 등급에 따라 장해보상연금 또는 장해보상일시금을 받습니다.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제1급부터 제3급까지는 연금으로만 지급됩니다(같은 법 제57조).
- 재요양 — 치유 뒤 악화돼 다시 치료가 필요하면 재요양을 신청할 수 있고, 그 기간에도 요양급여와 휴업급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사례 ②에 대입하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합의금 800만원은 두 달치 급여와 초기 치료비를 덮는 수준입니다. 반면 산재로 승인됐다면 요양기간 전체의 요양급여와 휴업급여가 나오고, 장해가 남으면 등급에 따른 장해급여가 별도로 지급되며, 뒤에 악화되면 재요양으로 이어집니다. 공상 합의금은 합의 시점에 보이는 손해만 계산한 금액이고, 산재보험은 그 이후 드러나는 손해까지 따라갑니다.
이런 대응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 각서에 먼저 서명하는 것 — 수급권은 남지만, 회사가 협조를 거부하는 명분이 되고 심리적으로도 신청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 다친 사실을 숨기고 건강보험으로 진료받는 것 — 나중에 정산·환수 문제가 생기고, 진료기록이 실제 경위와 어긋나 승인 심사에서 불리해집니다.
- 치료가 끝나기 전에 금액을 확정하는 것 — 장해 여부는 치유 시점에 판단됩니다. 치료 중 합의는 장해급여를 빼고 계산하는 결과가 됩니다.
- 시효를 넘긴 뒤에 문제 삼는 것 — 요양급여는 요양을 받은 날, 휴업급여는 휴업한 날의 각 다음 날부터 3년, 장해급여는 치유된 날의 다음 날부터 5년이 지나면 권리가 소멸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상 합의서에 이미 서명했는데, 지금이라도 산재 신청이 되나요?
가능합니다. 산재보험 급여는 공단에 대한 권리여서 사적 합의로 포기되지 않습니다. 다만 회사가 준 금액 중 보험급여에 상당하는 부분은 사업주의 수급권 대위 청구(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9조)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요양급여·휴업급여 3년, 장해급여 5년의 시효 안에 청구하십시오.
Q. 5인 미만 사업장인데도 산재 처리가 되나요?
됩니다. 산재보험은 근로자 1명 이상을 쓰는 사업장에 원칙적으로 모두 적용되고, 5인 미만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지 않습니다. 적용 제외는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근로자 5명 미만인 농업·임업(벌목업은 제외)·어업·수렵업 등으로 한정되며, 이 경우에도 임의가입이 가능합니다.
Q. 산재로 처리하면 회사 보험료가 오른다는데, 미안해서 망설여집니다.
개별실적요율은 건설업·벌목업을 제외한 사업 중 상시근로자 30명 이상인 곳에 적용되고, 건설업은 2년 전 보험연도 총공사금액 60억원 이상인 일괄적용 사업이 대상입니다. 30인 미만 일반 사업장은 요율이 조정되지 않습니다. 출퇴근 재해로 지급된 보험급여는 산정에서 빠집니다. 보험료는 전액 사업주 부담이라 근로자 급여에서 나가는 돈도 없습니다.
Q. 회사가 신청서에 날인을 안 해주면 산재 신청을 못 하나요?
요양급여 신청은 근로자 본인이 할 수 있고, 사업주 날인이나 확인은 접수 요건이 아닙니다. 공단이 사업주에게 신청 사실을 알리고 의견을 듣는 절차가 있을 뿐이며, 회사가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반려되지는 않습니다.
Q. 산재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요?
사업주는 근로자가 보험급여를 신청한 것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한 처우를 할 수 없고,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대상입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1조의2). 또 요양을 위해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가 제한되며(근로기준법 제23조 제2항), 이 조항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됩니다. 불이익이 있었다면 시점과 경위를 기록해 두고 노동청 진정을 검토하십시오.
체크리스트
- 최초 진료 때 업무 중 재해라는 사실과 구체적 경위를 의사에게 말하고 기록에 남기십시오.
- 재해 현장과 손상된 보호구를 사진으로 확보하고 목격자 연락처를 적어 두십시오.
- 공상 제안은 그 자리에서 답하지 말고 내용을 문자나 메일로 받아 기록을 남기십시오.
- 합의서에 "산재 신청 포기" 같은 문구가 있는지 확인하고 서명 전에 상담하십시오.
- 이미 건강보험으로 진료받았다면 정산·환수 가능성을 전제로 산재 전환을 검토하고, 낸 본인부담금 중 요양급여 해당액은 공단에 청구할 수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 3일 이상 휴업한 재해라면 회사가 1개월 이내에 산업재해조사표를 냈는지 확인하십시오.
-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면 금액을 확정하지 말고 치유 시점의 장해 여부를 본 뒤 판단하십시오.
공상처리를 제안받았다는 것은 회사도 그 사고가 업무상 재해임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판단 기준은 눈앞의 치료비가 아니라, 치료가 끝난 뒤 남는 장해와 재발을 누가 감당하느냐입니다. 서명 전에 경위를 기록으로 남기고 산재 신청 경로를 열어둔 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일반적인 노동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에 대한 전문적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공인노무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